2부. 달의 그늘에 숨은 문
1. 사다리의 그늘
사막 위로 해가 기울어갈 무렵, 아르카 프로젝트의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시설 남쪽 평지에 박혀 있던 첫 번째 실린더가 조용히 가라앉으며, 가동 테스트는 일단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상태였다. 그러나 모두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것은 성공이라기보다 ‘입구가 있음을’ 겨우 확인한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입구가 있다는 사실은 곧,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는 숙명을 의미했다.
은하는 회의실에서 종이에 직접 계획을 그려 보였다. 모래빛이 묻은 종이는 여러 번 접혔다 펴진 흔적이 있었다. 그녀가 굵은 선을 그어내리자, 실린더에서부터 시작해 남서쪽으로 길게 이어진 터널이 나타났다. “우리가 사다리라고 부르는 건 사실 이 터널 전체입니다. 중력장을 미세하게 조정하면서, 가르간티아의 주변까지 안전하게 우리를 밀어낼 수 있는 구조죠.”
엘리야는 그 선을 한참 바라보다가 물었다.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주에 안전은 없습니다. 다만 확률을 높일 수 있을 뿐이죠.” 은하는 솔직했다. 그녀의 말투엔 위로도, 과장도 없었다. 그저 건조한 사실만이 있었다.
리아는 아버지 옆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아이의 손끝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새로운 숫자와 간격을 기록했다. 그녀는 그 종이 위에서 문이 남긴 흔적과 사다리의 주파수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고 있었다. “비슷해요. 어제 바람이 가르쳐 준 패턴하고, 오늘 실린더에서 나오는 패턴이 겹쳐요. 그런데…” 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다른 리듬이 있어요. 마치 누군가가 그림자 뒤에 숨어서, 작은 박자를 더 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잠깐 서로를 보았다. 은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림자라….”
2. 달의 얼굴
며칠 뒤, 실험은 더 크게 확장되었다. 이번에는 사다리의 절반을 동시에 가동했다. 시설 남쪽 평지에 세워진 실린더 다섯 개가 동시에 낮은 울림을 냈다. 울림은 공명했고, 사막 전체가 거대한 현악기처럼 떨렸다. 하늘은 잿빛이었지만, 그 속에서 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달의 윤곽이 분명히 드러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달이 원래 저렇게 보여요?” 리아가 물었다.
“아니.” 미라가 대답했다. “대기의 밀도가 순간적으로 달라진 거야. 중력장이 공기를 얇게 눌렀나 봐.”
달의 표면에는 익숙한 분화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따라, 분화구의 그림자가 평소보다 길게 뻗어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달 뒤에서 빛을 살짝 당겨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리아는 손가락으로 그 그림자의 끝을 따라갔다. “여기에 문이 있어요.”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가 적중시킨 수많은 기록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하는 곧장 화면을 켜서 달의 좌표를 확대했다. 그림자 속에는 희미하게 움직이는 무늬가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단순한 잡음이라 여겼겠지만, 아르카의 연구진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것은 반복이었다. 리듬, 간격, 신호.
“문이 달의 그늘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은하가 중얼거렸다. “이제는 확실하군요.”
3. 준비
탐사 준비는 숨 가쁘게 이어졌다. 시설 내부는 마치 벌집 같았다. 사람들은 구역을 오가며 장비를 확인하고, 통신을 맞추고,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탐사선 ‘노마드’는 작은 원통형이었다.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조종석과, 뒤쪽의 관측 장치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캡슐이 아니었다. 사다리의 중력 조정장치와 맞물려, 안전하게 궤도까지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된 특별한 도구였다.
“탑승자는 두 명.” 은하가 다시 확인했다. “조종은 엘리야, 관측은 내가 맡겠습니다. 지상 관측은 리아가 중심이 되고, 류 박사와 미라가 함께 지원할 거예요.”
“저도 가고 싶어요.” 리아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말했다.
“아직은 안 돼.” 엘리야가 단호히 잘랐다. “너는 지상에서 지켜봐야 한다. 네 노트가 우리를 살릴 수도 있어.”
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아이의 눈빛은 포기하지 않았다. “문은 저한테 말 걸고 있어요. 아빠보다, 박사님들보다, 저한테요.”
엘리야는 그 말에 가슴이 아프게 저려왔다. 아이의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임무는 아이를 지키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네가 직접 가게 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리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지만, 노트에 다시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글씨는 예전보다 더 빠르고, 더 단단했다.
4. 출발
출발의 날은 이례적으로 하늘이 맑았다. 사막 위로 먼지가 덜 일었다. 마치 세계가 잠시 숨을 고르고, 그들에게 길을 내주려는 듯했다. 노마드는 사다리의 중심에 설치되었고, 실린더들은 낮게 울리며 중력장을 조율했다. 은하는 헬멧을 쓰며 엘리야를 바라보았다. “준비됐나요?”
“준비란 건 늘 미완성이지.” 엘리야가 답했다.
탑승석에 앉자, 세계가 갑자기 좁아졌다. 패널 위로 불빛들이 켜지고, 통신음이 귀를 울렸다. 리아의 목소리가 무전을 탔다. “아빠, 잘 들려요?”
“잘 들린다.” 엘리야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문이 열리면, 처음엔 아주 작을 거예요.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커질 거예요. 그때를 놓치지 마세요.”
엘리야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조종간을 꽉 쥐었다.
“사다리 가동 시작.” 은하의 목소리가 울렸다.
실린더들이 동시에 진동했다. 땅이 흔들리며, 사막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노마드가 부드럽게 떨리더니, 이내 위로 떠올랐다. 사다리의 힘이 그들을 밀어올리고 있었다. 중력이 잠시 방향을 잃고, 그들을 새로운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점점 옅어졌다. 먼지는 아래로 흩어졌고, 달의 그림자가 점점 뚜렷해졌다. 그 그림자 속에서, 어렴풋이 무언가가 열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 빛나는 틈, 현실의 껍질이 살짝 벗겨진 틈.
“저기다.” 은하가 숨을 죽이며 말했다. “문이다.”
5. 문
문은 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눈에 보기엔 작은 균열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균열 속에서는 다른 세계의 바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바람은 색을 가지고 있었고, 빛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소리도 냈다. 2, 7, 4, 5. 반복되는 박자의 속삭임. 리아의 노트에 적힌 그 숫자가 그대로 울려나오고 있었다.
“접근한다.” 엘리야가 조종간을 밀었다.
노마드는 균열을 향해 다가갔다. 균열은 가까워질수록 더 넓어졌다. 그것은 입처럼 열리며 그들을 삼키려 했다. 은하는 계기판을 주시하며 데이터를 기록했다. “중력 편차 증가. 궤도 안정성 70%… 65%… 조정 필요!”
“잡았다.” 엘리야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몸으로 계기를 읽고, 계기로 몸을 움직였다. 노마드는 흔들리며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세계가 뒤집혔다.
시간이 끊어졌다. 빛은 직선이 아니었고, 소리는 곡선으로 흘렀다. 엘리야는 자신이 여전히 앉아 있으면서 동시에 서 있고,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은하의 목소리는 마치 수백 년 전의 메아리처럼,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 올 미래의 편지처럼 들렸다.
그리고—모든 것이 다시 합쳐졌다.
노마드는 균열을 통과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인간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무수한 별들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그 별들 사이에는 거대한 어둠의 심장이 있었다. 가르간티아.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그러나 그 가장자리에, 새로운 길들이 있었다. 빛이 휘어지며 만들어진 다리, 중력이 얽히며 만들어진 통로.
“우리는 왔다.” 은하가 속삭였다. “문 너머에.”
6. 지상에서
그 순간, 지상에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리아는 관측실에서 눈을 크게 뜨고 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린더들의 울림이 변했고, 바람의 간격이 바뀌었다.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리아는 곧장 노트에 기록했다. 3, 1, 9, 2. 새로운 숫자였다. 새로운 신호였다.
“문이 또 다른 말을 하고 있어요.” 리아가 외쳤다. “아빠, 들려요? 새로운 리듬이에요!”
무전기 너머로 잡음이 섞였지만, 분명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린다. 기록해라. 절대 놓치지 마라.”
리아는 온 힘을 다해 연필을 움직였다. 종이는 거의 찢어질 듯했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숫자들은 하나의 문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약속 같았다. 경고 같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이었다.
7. 끝과 시작
노마드는 가르간티아의 가장자리에서 선회하고 있었다. 그 어둠은 모든 빛을 집어삼켰지만, 동시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은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저기…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엘리야는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그의 심장은 두렵고, 동시에 설레었다. 그는 알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지금부터가 진짜야.” 엘리야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노마드는, 달의 그림자 너머 또 다른 세계로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