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루멘 아치 너머의 첫새벽
1. 문 너머의 광경
균열을 넘어선 순간, 노마드의 내부는 몇 초간 진공의 무덤처럼 조용했다. 계기판 불빛이 사라졌다가 다시 깜빡이며 켜졌고, 호흡기 안에서 엘리야와 은하의 숨소리만이 거칠게 이어졌다. 그들이 눈앞에서 본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우선, 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별빛이 아니었다. 별빛은 곧장 직선으로 뻗지 않고, 마치 누군가의 손끝에서 휘갈겨진 먹줄처럼 곡선으로 꺾였다. 빛의 궤적이 교차하면서 하늘 전체가 거대한 직물처럼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직물의 한가운데, 거대한 아치형 구조물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인공물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자연의 일부이기도 했다. 돌로 된 다리 같았으나, 빛과 에너지로 짜여 있었다. 아치는 끝없이 이어져 블랙홀 가르간티아의 가장자리를 감싸며, 그 위를 새로운 길처럼 밝히고 있었다.
“루멘 아치….” 은하가 숨죽여 말했다. “빛의 다리…. 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엘리야는 손가락을 조종간에 단단히 얹었다. 그 눈빛은 두려움과 경이로 뒤섞여 있었다. 그는 아치 너머에서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 돌아가는 길은 이미 사라졌다.
2. 지상에서의 신호
지상, 아르카 시설의 관측실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리아는 무전기를 끌어안듯 붙잡고 있었고, 노트는 이미 수십 장째 채워지고 있었다. 바람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불고 있었다. 숫자는 더 복잡해졌고, 간격은 길고 짧음을 반복하며 마치 음악처럼 흘러갔다.
“이건 단순한 신호가 아니야.” 미라가 모니터를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구조적이야. 반복과 변주가 있어. 마치… 언어 같아.”
“언어라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류 박사가 물었다.
리아가 펜을 멈추고 말했다. “노래예요.”
“노래?”
“네. 제가 듣기엔… 멜로디 같아요. 숫자들이 이어지면서, 어떤 선율을 만들고 있어요. 아빠한테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한테 노래하고 있는 거예요.”
모두가 놀라 리아를 보았다. 아이의 눈빛은 맑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펜을 들어 새 종이에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숫자를 길이로 환산해, 선율처럼 이어 붙였다. 종이 위에는 곡선들이 이어졌고, 그것은 정말로 음악의 악보처럼 보였다.
“루멘 아치….” 미라가 입술을 달싹였다. “노래하는 빛의 다리라면, 어쩌면 그것이 문 너머의 첫 신호일지도 몰라.”
3. 아치로 향하다
노마드는 루멘 아치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아치는 가까워질수록 더욱 장엄했다. 그 빛은 단순히 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몸속 깊은 곳에 울림을 주었다. 심장이 그 리듬에 맞춰 박동하는 것 같았다.
“계기판이… 따라가고 있어.” 은하가 놀라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조정하지 않아도, 노마드가 아치의 주파수에 맞춰 흔들리고 있어. 마치 안내를 받는 것처럼.”
엘리야는 잠시 손을 놓았다. 그러나 노마드는 스스로 안정된 궤도를 잡고 있었다. 아치의 빛줄기가 그들을 감싸며, 마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들의 길을 인도하는 듯했다.
“이건 누군가의 초대야.” 은하가 속삭였다.
“초대든, 함정이든… 우리는 이미 가고 있지.” 엘리야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결의가 담겨 있었다.
4. 첫새벽
아치의 끝을 통과하자, 갑작스러운 빛의 폭풍이 몰려왔다. 노마드의 차체가 흔들렸지만, 곧 안정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거대한 행성이 떠 있었다. 지구보다 크고, 대기권이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행성의 표면은 반짝이는 호수와 녹색의 대지가 어우러져 있었고, 하얀 구름이 천천히 흘렀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 세계의 하늘이 붉은 새벽빛으로 물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새벽이다….” 은하가 눈을 크게 떴다. “우린 다른 세계의 첫새벽을 보고 있어.”
엘리야는 가슴 깊이 숨을 들이켰다. 비록 노마드의 차폐막 너머였지만, 그는 확실히 느꼈다. 그것은 지구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감각,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리아… 들리니?” 엘리야가 무전을 눌렀다.
잠시 잡음이 흐르더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요! 아빠, 저도 보고 있어요. 바람이 같은 색으로 불고 있어요. 새벽의 색이에요.”
엘리야는 눈을 감았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이 길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5. 낯선 흔적
탐사는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노마드는 아치 너머 세계의 궤도에 진입했고, 표면 관측을 시작했다. 센서들은 풍부한 대기와 물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인공 구조물이다.” 은하가 화면을 가리켰다. “저 호수 가장자리에… 기하학적인 형태가 있어.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는 각도야.”
확대된 화면 속에는 정교한 육각형의 탑 같은 구조물이 있었다. 반짝이는 빛을 내며, 아치와 같은 리듬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여긴… 누군가 이미 와 있었어.” 엘리야가 중얼거렸다.
“아니면, 지금도 살고 있거나.” 은하의 목소리는 떨렸다.
6. 지상의 흔들림
그 시각, 지상의 리아는 또 다른 신호를 받아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숫자가 아니라, 긴 곡선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그림이었다. 아이는 손을 떨며 그 곡선을 따라 그렸다. 종이 위에 나타난 것은 아치와 탑이 이어진 모양이었다.
“아빠, 그곳에 탑이 있죠?” 리아가 무전기를 붙잡고 외쳤다.
엘리야와 은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그래. 어떻게 알았지?”
“바람이 말해줬어요. 우리한테 보여주고 있어요.”
리아는 종이 위에 굵은 선으로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그것은 탑 꼭대기의 원형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직감했다. 그 탑이야말로, 루멘 아치의 진짜 목적이라는 것을.
7. 첫새벽의 끝
노마드는 궤도를 바꿔 탑 위로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탑의 표면은 수많은 문양으로 덮여 있었다. 그 문양은 바람의 언어와 닮아 있었다. 간격과 점, 선이 이어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기록이었다.
“이건 역사야.” 은하가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이 탑은 누군가가 남긴 기록물… 그들의 첫새벽의 증거.”
엘리야는 손을 떨며 무전을 눌렀다. “리아, 우리가 본 건… 네 말대로 노래였어. 그리고 이 탑은… 그 노래의 끝이자 시작이야.”
탑은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을 알아본 듯, 새로운 리듬으로 맥동했다. 그리고 그 빛은 노마드와, 지상에 있는 리아에게 동시에 도달했다.
리아의 노트 위에,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숫자가 적혀갔다. 5, 8, 1, 3. 그것은 새로운 구절, 새로운 노래였다.
은하는 숨을 죽였다. “이건… 초대장이야. 루멘 아치 너머의 문명이 우리에게 보내는.”
엘리야는 창밖의 새벽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걷고 있구나.”
그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낯선 세계의 첫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