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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에게 보내는 편지 - 6부. 진실보다 먼저 도착한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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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진실보다 먼저 도착한 신호


1. 어둠 속의 씨앗

정원의 문이 닫히자, 노마드를 둘러싼 모든 빛이 꺼졌다. 순간, 우주는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다. 그러나 곧 어둠 속에서 작은 별빛들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마치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 같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각기 씨앗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투명한 껍질 안에 미세한 빛의 점이 뛰놀고 있었다.

“저건… 별의 태아 같아.” 은하가 숨죽여 말했다.

“우린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온 셈인가.” 엘리야가 낮게 중얼거렸다. “우주의 씨앗들이 태어나기 전의 공간.”

씨앗들은 무작위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 빛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기 시작했다. 점멸하는 리듬, 반복되는 간격. 그것은 명백한 신호였다.


2. 먼저 도착한 메아리

“수신 신호 감지!” 은하가 계기판을 두드렸다. 화면에 불규칙한 파형이 나타났다가, 이내 선율 같은 곡선으로 바뀌었다.

“2745… 3192… 5813….” 은하의 손가락이 떨렸다. “이건 우리가 이미 해독한 숫자야. 바람, 바다, 얼음꽃 정원. 전부 여기서 다시 울려나오고 있어.”

엘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뭔가 이상해. 신호가 우리가 경험한 순서보다 앞서 있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전해지고 있어.”

실제로 계기판에는 ‘아직 보지 못한’ 패턴이 포함되어 있었다. 리아의 노트에도 기록된 적 없는 새로운 배열. 그것은 마치 미래에서 흘러온 메아리 같았다.


3. 지상의 혼란

아르카 기지에서도 동일한 신호가 잡혔다. 모니터에는 노마드가 보낸 신호와는 다른, 더 빠른 주파수가 동시에 포착되고 있었다.

류 박사가 소리쳤다. “이건 불가능해! 아직 송신되지 않은 데이터가 먼저 도착하고 있어!”

미라의 손이 떨렸다. “시간의 간극 때문이야. 씨앗의 세계는 우리보다 앞서거나, 혹은 뒤에 있어. 신호가 미래에서 도착하고 있는 거야.”

리아는 펜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이미 그 패턴을 따라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곧 멈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진실이 아니에요.”

모두가 놀라서 아이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니?”

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 신호는 진실보다 먼저 왔어요. 그래서 아직 거짓이에요. 진실은 나중에 와요. 기다려야 해요.”


4. 갈등

노마드 내부에서도 긴장이 고조됐다. 은하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이건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주려는 거야.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알려주는 것일지도 몰라.”

엘리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미래를 아는 건 축복이 아니야. 거짓된 확신만 키울 뿐이지. 신호는 우리를 시험하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은하가 물었다.

엘리야는 조용히 대답했다. “기다린다. 진실이 스스로 도착할 때까지.”


5. 아버지와 딸의 대화

무전기에서 리아의 목소리가 흘러왔다. “아빠, 신호가 저한테도 왔어요. 근데 저는 안 믿을래요. 아빠도 그러죠?”

엘리야의 눈이 젖어들었다. “그래. 우리 둘은 거짓의 속삭임보다, 서로의 목소리를 믿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은 두려움이 아니라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6. 씨앗의 폭풍

突如, 씨앗들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빛이 일제히 밝아지며, 우주 전체가 번쩍였다. 신호가 폭풍처럼 몰려왔다. 노마드의 계기판이 경고음을 울렸다.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은하가 소리쳤다.

“진실이 오기 전까진 버텨야 해!” 엘리야가 조종간을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수많은 신호가 겹쳐지며 하나의 거대한 음성이 되었다. 그것은 분명한 언어였다.

“선택하라.”


7. 선택

엘리야와 은하는 동시에 숨을 죽였다. “선택이라니… 무얼?” 은하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음성은 반복했다. “선택하라.”

노마드의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하나는 강렬한 빛으로 가득 찬 길, 다른 하나는 완전히 어두운 길.

“밝음은 확신을 준다.” 은하가 말했다. “하지만… 어둠은 두려움뿐이야.”

엘리야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밝음이야말로 거짓일 수 있다. 진실은 언제나 어둠에서 시작된다.”


8. 결단

무전기에서 리아의 목소리가 흘렀다. “아빠, 어둠을 선택해요. 꽃도, 바다도, 바람도 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어요. 근데 기다리면 빛이 왔잖아요. 진실도 그럴 거예요.”

엘리야는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좋아. 어둠이다.”

그는 조종간을 돌려, 노마드를 어둠 속 길로 이끌었다.


9. 어둠 속의 빛

노마드가 어둠 속으로 들어서자, 계기판은 완전히 꺼졌다. 은하는 숨이 막히는 듯했지만, 곧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들이 하나둘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씨앗들이 열리며 만들어낸 새로운 별빛이었다.

“진실은… 기다리는 자에게 온다.” 엘리야가 낮게 말했다.

무전기에서 리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빠, 이제 들려요. 진짜 노래가.”


10. 진실의 신호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진 신호는 단순했다. 그러나 명확했다.

“너희는 준비됐다.”

엘리야와 은하는 동시에 숨을 죽였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진실보다 먼저 도착한 거짓의 신호가 아닌, 지금 막 도착한 진짜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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