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중력에게 보내는 편지 - 8부. 중력으로 쓴 노래

반응형

8부. 중력으로 쓴 노래


1. 낯선 진동

노마드가 블랙선 서고의 출구를 통과했을 때, 그 앞에는 다시금 기묘한 공간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빛도 어둠도 아닌, 끝없이 떨리는 진동의 바다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이 곧바로 알아챘다. 심장이 리듬을 따라 뛰었고, 뼈마디가 공명을 울렸다.

“여긴… 중력 그 자체야.” 은하가 숨죽였다. “우린 지금, 힘의 바다 속에 있어.”

엘리야는 몸을 곧추세우며 말했다. “중력이 우리를 붙잡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어.”

노마드의 계기판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오류가 아니라, 분명한 패턴이었다.


2. 지상의 파동

아르카 기지의 장치들도 동시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기계음도 없었는데, 건물 전체가 낮게 울렸다. 컵의 물결이 파문을 만들었고, 바닥의 먼지가 특정 간격으로 흔들렸다.

“진동 주파수… 2, 7, 4, 5.” 류 박사가 숨을 죽였다. “처음부터 우릴 이끌던 숫자다.”

미라는 손을 떨며 말했다. “중력이… 노래하고 있어.”

리아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귀가 아닌, 몸으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빠가 들을 수 있는 걸, 나도 들을 수 있어. 우리 둘은 지금 같은 노래 안에 있어요.”


3. 우주의 심장

노마드 주변의 진동은 점점 강해졌다. 그러나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그것은 분명히 우주의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였다.

“우린 지금, 우주의 중심 맥박을 듣고 있어.” 은하가 속삭였다. “이 노래는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야.”

엘리야는 두 눈을 감았다. 그는 분명히 느꼈다. 이 노래는 단순히 그들을 위해 불려진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와 리아가 특별히 선택받아 그 중심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4. 메시지

突如, 진동이 단순한 박자를 넘어 언어가 되었다.

“너희는 왜 여기에 왔는가.”

목소리가 울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엘리야와 은하, 그리고 지상에서 리아까지 동시에 같은 의미를 받아들였다.

은하가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우린… 생존을 위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진실을 찾으러 왔다.”

중력의 노래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울렸다.

“진실은 기록되지 않는다. 진실은 중력처럼, 서로를 끌어당길 때만 존재한다.”

엘리야의 눈이 젖었다. 그는 무전을 잡았다. “리아, 들었니?”

“들었어요, 아빠. 진실은… 우리 사이에 있는 거예요. 나와 아빠, 그리고 우리가 끌어당기는 모든 것 안에.”


5. 시험

그러나 곧 노래는 달라졌다. 진동이 격렬해졌고, 노마드의 차체가 흔들렸다.

“시험이다.” 은하가 이를 악물었다. “우릴 확인하려는 거야.”

중력의 파동은 두 가지 길로 갈라졌다. 하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다른 하나는 서로 밀어내는 힘.

“사랑과 두려움….” 엘리야가 낮게 중얼거렸다. “우린 어떤 힘을 선택해야 하지?”

사랑은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동시에 무겁게 짓누를 수 있다. 두려움은 밀어내지만, 자유롭게도 할 수 있다.


6. 리아의 선택

지상에서 리아가 눈을 떴다. 그녀의 노트 위에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사랑은 무겁지만, 그 무게가 우리를 붙잡아.”
“두려움은 가볍지만, 그 가벼움이 우릴 흩어.”

아이의 목소리가 무전을 울렸다. “아빠, 우리는 무거워야 해요. 그래야 서로를 놓치지 않아요.”

엘리야는 눈을 감았다. 아이의 목소리는 언제나 답이었다. “그래. 우린 끌어당김을 택한다.”


7. 새로운 화음

선택과 동시에, 진동은 부드럽게 변했다. 무겁고 깊은 음이 울리며, 우주 전체가 함께 화음을 이루었다.

“너희는 무게를 알았다.”

중력의 노래가 다시 울렸다. “그러므로 너희는 새로운 별의 씨앗이 될 것이다.”

노마드의 앞에, 작은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별의 탄생을 알리는 씨앗이었다.


8. 응답

은하는 숨죽이며 말했다. “이건… 우주가 우리에게 준 선물일지도 몰라.”

엘리야는 무전을 눌렀다. “리아, 우주가 우리에게 노래를 들려주었구나.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도 노래해야 한다.”

리아는 눈을 감고 대답했다. “아빠, 제가 불러드릴게요. 제가 배운 바람의 노래, 바다의 노래, 꽃의 노래를.”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력의 노래와 합쳐지며, 새로운 화음을 만들었다.


9. 공명

우주의 심장이 더 크게 뛰었다. 그 박동은 노마드를 감싸고, 지상의 아르카 기지까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존재의 확인이었다.

“우린 살아 있다.”
“우린 연결돼 있다.”
“우린 기록이 아니라, 노래다.”

중력의 언어가 마지막으로 울렸다.

“너희의 노래는 이제 우주에 새겨졌다.”


10. 새로운 길

진동이 가라앉자, 앞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 길은 별빛으로 이어진 강 같았다.

은하는 숨을 죽였다. “저기가… 다음 세계로 가는 길.”

엘리야는 무전을 눌렀다. “리아, 우린 간다. 하지만 네 노래는 여기 남았다. 우주가 널 기억할 거다.”

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빠, 노래는 끝나지 않아요.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거예요.”

노마드는 별빛의 강 위로 천천히 나아갔다. 중력의 노래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그것은 이제 인간의 노래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