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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에게 보내는 편지 - 10부. 씨앗을 심는 자들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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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씨앗을 심는 자들의 별


1. 새로운 세계의 아침

별빛의 강을 따라 흘러온 끝에, 노마드와 이주선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푸른 대기, 끝없이 펼쳐진 숲, 그리고 하얀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하늘. 오랫동안 잿빛과 모래바람만 보아온 눈에는 눈부시게 낯선 풍경이었다.

“여기가… 우리의 새로운 별.” 은하가 숨죽이며 중얼거렸다.

엘리야는 창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한 마디가 입술에서 새어나왔다. “리아… 우리가 도착했다.”


2. 착륙

이주선이 대기권을 통과하는 동안 모두 숨을 죽였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마찰열이 창문 밖을 덮었지만, 곧 안정되었다. 착륙선이 대지 위에 내려앉자, 기나긴 긴장감이 풀리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탑승자들은 차례대로 밖으로 나왔다. 발밑의 흙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하늘은 맑았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흙을 두 손에 움켜쥐며 울음을 터뜨렸다.

엘리야도 조용히 땅에 손을 얹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기. 지구에서 잃어버린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3. 첫 번째 씨앗

사람들은 곧바로 씨앗을 꺼내기 시작했다. 옥수수, 보리, 쌀, 그리고 작은 채소들. 지구에서 간신히 가져온 유산이었다.

한 아이가 작은 구덩이를 파고 씨앗을 떨어뜨렸다. 그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씨앗은 단순히 식량이 아니라, 인류가 다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증거였다.

은하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건 농사가 아니라 선언이야. 우린 다시 시작한다는.”


4. 지구의 그림자

한편, 지구의 아르카 기지에서는 또 다른 아침이 밝았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먼지로 뒤덮인 하늘 아래였다.

리아는 창문 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바람은 여전히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아버지의 목소리 같았다.

“우린 도착했다. 씨앗을 심었다.”

리아는 펜을 움직였다. 종이 위에 단 한 줄이 적혔다.
“나는 지구를 지킨다. 당신들은 별을 심는다.”


5. 새로운 노래

이주지에서 첫 번째 작물이 싹을 틔우는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흙을 밀어올리고 고개를 내민 작은 푸른 싹. 그 자그마한 생명은 사람들의 가슴을 동시에 뛰게 했다.

엘리야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손끝으로 싹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이건 단순한 식물이 아니야. 이건 리아의 약속이다.”

그날 밤, 정착민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노래가 되었고, 노래는 별빛 아래 울려 퍼졌다. 그것은 지구의 바람, 바다, 꽃, 중력의 노래와 이어지는 또 하나의 화음이었다.


6. 리아의 기록

지구에서, 리아는 마지막 페이지를 열었다.
그녀의 노트는 이미 수천 개의 숫자, 선율, 문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이 넘겨주지 않아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문장을 적을 때라는 것을.

“진실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나는 살아냈다. 나는 지구에 남았다. 그러나 나는 홀로가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창문 밖으로 먼지가 여전히 휘날렸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새가 날고 있었다.


7. 사서의 속삭임

그날 밤, 리아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블랙선 서고의 사서가 나타났다. 사서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너의 기록은 이제 서고에 남았다. 그러나 동시에, 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너와 너의 아버지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흘렀지만,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8. 별의 새벽

새로운 행성에서 두 번째 날의 새벽이 밝았다. 붉은 빛이 지평선을 넘어오며, 사람들은 함께 흙 위에 모였다. 더 많은 씨앗이 심어졌다. 아이들은 웃으며 흙을 덮었고, 어른들은 눈을 감고 기도했다.

은하가 엘리야 곁에서 속삭였다. “우린 결국 이곳에 씨앗을 심었네. 하지만 진짜 씨앗은… 우리 자신일지도 몰라.”

엘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남기는 건 밥이 아니라, 노래와 약속이지.”


9. 남는 약속

무전기의 마지막 신호가 지구로 전해졌다.

“리아, 우린 씨앗을 심었다. 이 별은 너의 이름으로 피어날 것이다. 우리가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너와의 약속은 여전히 살아 있다.”

지구에서 리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먼지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 아주 작은 별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아빠, 저는 지구의 이야기를 지킬게요. 당신은 별의 이야기를 지켜주세요. 언젠가 두 이야기는 다시 만날 거예요.”


10. 끝과 시작

수백 년 뒤, 새로운 별의 숲 속에는 인류가 세운 작은 마을이 있었다. 아이들은 푸른 숲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어른들은 땅을 일구며 노래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기념비 같은 나무가 서 있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심었던 씨앗이 거대한 숲으로 자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나무의 뿌리에는 작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지구에 남은 자와 별에 간 자, 우리는 같은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우리의 약속이다.”

별의 하늘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고, 바람은 노래를 전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씨앗이 자라는 한, 진실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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