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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그림자

분단의 그림자 - 제8편 테러리스트의 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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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그림자》

제8편 테러리스트의 경기장

서울 월드컵 경기장. 아직 경기는 며칠 남았지만, 현장은 이미 분주했다. 남북 단일팀의 월드컵 예선 출전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고, 경기장 외곽에는 보안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준비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경기장 구조물 아래, 음습한 통로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북한 간첩 조직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은밀히 옮겨온 CTX 폭약이 들려 있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오늘 밤, 설치를 완료한다.”
지휘자의 목소리는 냉혹했다.

그들 옆에는 방희가 서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은 심한 폭풍에 휘말려 있었다.

‘이 폭발이 성공한다면… 수만 명이 죽는다. 그리고 중원도 그 현장에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조직의 명령은 절대였다.


한편, 국정원 본청. 회의실에 긴급 경보가 울렸다.

“첩보망에 따르면, CTX가 이미 경기장 내부로 반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뮬레이션 지점과 일치하는 위치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국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즉시 진입하라. 실패는 없다.”

유중원과 이장길은 곧바로 현장 투입 명령을 받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장길이 낮게 물었다.
“형… 혹시 이번에도 그 여자가 있을까?”

중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빛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다.
“있다면… 이번엔 반드시 끝을 내야 한다.”


밤이 내려앉은 경기장. 관중석은 비어 있었지만, 거대한 구조물은 묵직하게 서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은 무장한 채 은밀히 잠입했다.

중원은 무전기로 지시했다.
“팀 A, 관중석 하부 확인. 팀 B, 철골 구조물로 이동. 팀 C, VIP 구역 확보.”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북한 조직원들이 미리 배치해둔 경계병이었다. 격렬한 총격전이 시작되었고, 어둠 속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중원은 몸을 날려 엄폐 뒤에 숨으며 외쳤다.
“CTX 위치 확보가 최우선이다! 놈들이 폭탄을 기폭시키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한편, 방희는 철골 구조물 아래에서 폭약을 설치하고 있었다. 타이머가 연결되는 순간, 그녀의 손이 다시금 멈췄다.

머릿속에서 중원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명현아, 네가 감당하기 힘든 비밀이 있다면…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조직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멈췄나? 지시대로 하라!”

방희는 결국 손을 떨며 스위치를 눌렀다. 기폭 장치는 설치되었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국정원 요원들은 점점 안쪽으로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폭발물이 설치된 흔적을 발견했다. 장길이 무전으로 보고했다.
“형! 철골 구조물 아래에 이상한 장치가 있어요. CTX 맞습니다!”

중원의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타이머 해체 준비. 내가 간다.”

그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총탄이 빗발쳤지만, 그의 눈에는 오직 하나만 보였다. CTX.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여인의 실루엣.


그녀였다. 방희.

중원은 총을 겨누었지만,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녀 역시 총을 들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명현아…”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방희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차갑게 속삭였다.
“돌아가. 이건 내 임무야.”

“임무? 그 임무가 수만 명을 죽게 한다고?!”

“나는 군인이야. 선택권이 없어.”

“아니, 넌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야. 내 사랑이야. 그걸 부정하지 마.”

그 순간, 그녀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손에 쥔 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타이머는 초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00:12:45 … 00:12:44 …

중원은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폭탄을 멈춰. 아니면 내가 널 막겠다.”

방희는 떨리는 손끝으로 기폭기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심장은 갈라지고 있었다. 조국의 명령과,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 사이에서.


격렬한 교전이 이어지는 경기장 한편에서는 요원들이 북한 조직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총탄이 벽을 갈기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장길이 무전으로 소리쳤다.
“형!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 해체해야 해!”

중원은 방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명현아, 제발… 너의 심장은 군인이 아니라 사람이잖아.”

그녀는 끝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물 속에서 속삭였다.
“…중원아, 미안해.”


그 순간, 방희는 총을 내려놓고 타이머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다른 조직원이 달려와 그녀를 막았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총성이 울렸다.

방희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중원의 눈이 번쩍 뒤집혔다.
“명현아!”

그는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피가 그의 손을 붉게 물들였다.


타이머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00:04:59 … 00:04:58 …

중원은 필사적으로 기폭 장치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지만,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 있었다. 그녀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

마침내, 00:00:07에서 타이머가 멈췄다.

요원들의 환호가 들렸지만, 중원의 눈에는 오직 그녀만이 있었다.


방희는 피투성이가 된 채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흐려져 갔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속삭였다.
“내 마음만은… 거짓이 아니었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서로 다른 조국의 경계에서, 같은 인간의 눈물이었다.


국정원은 테러를 저지했지만, 북한 간첩 조직의 잔당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중원은 사랑과 임무 사이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경기장의 차가운 바닥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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