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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그림자

분단의 그림자 - 제2편 사라진 탄환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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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그림자》

제2편 사라진 탄환의 행방

서울 용산의 국정원 본청 작전 회의실. 스크린에는 인천항 폭발 사건의 현장 사진과 CCTV 캡처 화면이 가득 띄워져 있었다. 컨테이너 더미가 무너져 내린 잔해, 불에 탄 차량들, 그리고 흐릿하게 포착된 인물들의 실루엣.

“폭발력은 C-4 이상의 수준입니다. 하지만 파편 잔해 분석 결과, 그 성분이 기존 폭약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대공수사국 분석관의 설명에 회의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유중원은 화면을 주시하며 한 장의 캡처 사진에 눈길이 멈췄다. 폭발 직전, 고지대에서 소총을 들고 현장을 감시하던 실루엣.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흘러내린 여성의 모습이었다.

“이장길.” 중원이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네, 형.”
“저 장면, 확대해.”

장길이 키보드를 두드리자, 흐릿하던 이미지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여인의 옆모습이 드러났다. 날카로운 턱선, 흔들림 없는 눈빛.

중원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요동쳤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그 얼굴은,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애써 시선을 떼며 말했다.
“분석팀에 맡겨라. 이 여자가 누구인지, 전력부터 전부 파악해.”


며칠 뒤, 중원은 또 다른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경기도 외곽의 군수업체 창고가 습격당했다. 무장 괴한들이 침입해 신형 소총과 특수 탄환을 대량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특이한 점은, 모든 무기 중 오직 저격용 탄환만이 집중적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흔한 탄환이 아니에요.” 장길이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건 미국에서도 한정적으로만 생산되는 ‘블랙 피어스’ 탄환입니다. 관통력과 안정성이 뛰어나, 최정예 저격수만이 다루는 탄환이죠.”

중원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즉, 이 탄환을 가져간 놈들은…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훈련받은 저격수라는 거군.”

그의 머릿속에는 인천항에서 본 그 여인의 실루엣이 다시 떠올랐다.


한편, 서울 강남. 이명현은 평소처럼 수족관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보며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두운 먹구름에 휩싸여 있었다.

며칠 전, 그녀는 북한 상부로부터 새로운 임무 지령을 받았다. CTX 폭약 확보와 월드컵 예선 경기장 테러 준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블랙 피어스’ 탄환을 반드시 사용할 것.

명현은 물속을 헤엄치는 열대어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왜 아직 이곳에 있는 걸까? 왜 그 사람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언젠가 진실이 드러날 것이고, 그 순간 중원은 자신을 겨누게 될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이 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국정원 본청. 분석팀의 보고가 올라왔다.
“인천항에서 포착된 여성, 과거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흔적이 지워져 있습니다.”

중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불가능해. 모든 간첩은 신분 세탁을 하더라도 어딘가 작은 흔적은 남기기 마련이지.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건… 곧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지워냈다는 뜻이다.”

그는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에 불길한 의심이 스쳐 지나갔다. 명현의 따뜻한 미소와, 저격수의 차가운 눈빛이 겹쳐졌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미쳐가는 거야.’


며칠 뒤, 국정원은 또 다른 첩보를 입수했다. 북한 간첩 조직이 서울 외곽의 비밀 거래장에서 CTX 샘플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중원과 장길은 즉각 작전에 투입되었다. 거래 현장은 폐허가 된 공장 내부. 어둠 속에서 밀매업자와 북한 요원들이 거래를 진행하고 있었다.

중원은 무전기를 들고 명령했다.
“표적 확보 준비. 신호와 동시에 진입한다.”

그 순간, 공장 천장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쩍였다. 저격 스코프의 반사광.

“저격수다! 엄폐!”

총성이 울려 퍼졌다. 국정원 요원의 어깨가 관통당하며 쓰러졌다. 이어서 또 다른 총성. 블랙 피어스 탄환이 벽을 뚫고 날아들었다.

중원은 본능적으로 총을 겨누었지만, 시야에 보이는 건 오직 어둠 속의 실루엣뿐이었다. 그리고 그 실루엣은, 기묘하게도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의 심장은 다시금 멎을 듯 뛰었다.
‘명현…? 아니, 있을 수 없어.’


격렬한 교전 끝에 간첩 조직은 일부 무기를 챙겨 도주했다. 현장에 남은 것은 쓰러진 요원들과, 그리고 흩어진 탄피뿐이었다.

중원은 바닥에 떨어진 탄피 하나를 집어 들었다.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블랙 피어스 탄환. 그것은 분명히 인천항에서 사라진 탄환이었다.

“형, 이건…” 장길이 다가왔다.
“그래. 같은 탄환이다. 즉, 우리가 쫓는 놈들과 저격수가… 모두 같은 조직에 있다는 증거지.”

중원은 탄피를 꽉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잡아낸다. 그리고… 진실을 확인한다.’


그날 밤, 그는 명현의 수족관을 찾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하는 그녀. 하지만 중원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어딘가에, 설명할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그는 차마 묻지 못했다.
“오늘도 고생 많았지?” 명현이 다정하게 물었다.
중원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힘겹게 웃어 보였다.
“그래. 네가 있어서 버틸 수 있어.”

그러나 그의 손 안에서는, 여전히 차갑게 식지 않은 탄피의 감각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국정원 내부 보고서에는 단 한 줄의 새로운 결론이 적혀 있었다.

“사라진 탄환은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 그러나 그 탄환은 곧 대한민국의 심장을 겨누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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