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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그림자

분단의 그림자 - 제5편 CTX의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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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그림자》

제5편 CTX의 불길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국정원 본청 작전 회의실. 스크린에는 붉은 경고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CTX 폭약, 국내 반입 확인.”

회의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든 요원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대공수사국 국장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했다.
“드디어 놈들이 손에 넣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유중원은 의자에 앉아 차갑게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그 폭약이 폭발한다면… 수천 명이 죽을 수 있어.’

그리고 동시에, 그 폭약을 다루는 자가 누구일지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인천항을 통해 은밀히 반입된 금속 용기. 그것이 곧 CTX였다. 보통 폭약과 달리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이 신무기는 작은 플라스틱 통 하나로도 경기장을 무너뜨릴 만큼의 위력을 지녔다.

북한 간첩 조직은 확보한 CTX를 서울 외곽의 폐공장에서 실험했다. 깊은 밤, 그곳에는 차갑게 무장한 요원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이방희가 있었다.

“목표 구역 설정.”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부하 요원들이 작은 통에 든 액체를 벽에 부착한 기폭 장치에 연결했다.

3초 뒤, 지옥이 펼쳐졌다. 폭발은 불꽃보다도 빠르게 확산되며 벽을 산산조각 내고, 지면을 흔들었다. 파편은 수십 미터 밖까지 날아가며 불길이 치솟았다.

부하들은 환호했지만, 방희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차갑게 현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갈등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힘으로…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파괴하게 될까?’


국정원은 곧바로 실험 흔적을 감지했다. 폐공장 잔해 속에서 분석팀은 CTX 특유의 화학 성분을 발견했다.

장길이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형, 이제는 확실해요. 놈들이 CTX를 확보했어요. 그리고 실험까지 끝냈습니다.”

중원은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없어. 그들이 언제든 실전 투입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불길이 일렁였다. 그 불길은 단순한 임무의 긴장이 아니었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이 모든 불길의 중심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그날 밤, 명현의 수족관. 아이들이 돌아간 뒤 고요해진 공간에서, 그녀는 혼자 수조를 닦고 있었다. 유리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그녀를 비추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중원이 들어왔다.

“오늘도 늦었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응. 일이 좀 복잡했어.”

중원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고르다, 결국 조심스럽게 물었다.
“명현아… 만약에, 네가 감당하기 힘든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그녀의 손이 순간 멈췄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난 그냥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게 전부인데.”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중원은 알 수 있었다. 그 미소 뒤에서 그녀의 심장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며칠 후, 국정원은 새로운 첩보를 입수했다. 북한 조직이 CTX를 옮기기 위해 서울 강북의 한 지하철 노선을 이용한다는 정보였다.

중원과 장길은 잠입 작전에 투입되었다. 밤늦은 시간, 인적이 드문 지하철 공사 구간. 어둠 속에서 무장한 남자들이 금속 용기를 옮기고 있었다.

“대상 확인. 진입 준비.” 중원이 무전을 속삭였다.

순간, 총성이 울렸다. 블랙 피어스 탄환이 날아와 벽을 뚫고 지나갔다. 저격수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방희다!” 장길이 소리쳤다.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다. 총탄이 어둠을 갈랐고, CTX가 든 금속 용기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긴장된 순간, 방희가 옥상에서 총을 겨누었다. 그녀의 표적은 CTX를 되찾으려는 국정원 요원.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녀는 총구를 살짝 틀었다. 탄환은 요원의 다리 옆을 스치며 벽을 박살냈다. 요원은 살아남았다.

중원은 그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심장이 무섭게 요동쳤다.
‘그녀다… 명현이다… 하지만 왜 살려둔 거지?’


결국 북한 조직은 CTX 일부를 챙겨 달아났다. 국정원은 큰 피해를 입었고, 사건은 철저히 은폐되었다.

작전 후, 중원은 홀로 현장에 남아 있었다. 바닥에 남은 탄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블랙 피어스. 손끝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감촉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체온과 겹쳐졌다.

“명현아… 정말 너냐?”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빛은 흔들렸다.


며칠 뒤, 북한 간첩 조직의 은신처. 방희는 상부 보고를 위해 무전기를 들었다.
“CTX 이송 완료. 다음 단계 준비 중입니다.”

그러나 보고를 마친 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사람, 중원만이 떠올랐다.

‘나는 군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 날 무너뜨린다.’


국정원 본청에서는 최종 보고가 내려왔다.

“CTX 일부가 도주 중에 손실되었으나, 잔여 폭약이 여전히 북한 조직의 수중에 있음이 확인됨. 목표는 남북 단일팀 월드컵 예선 경기. 테러 가능성 매우 높음.”

중원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차갑게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설령… 그 끝에서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잃게 된다 해도.”


그 순간부터, CTX의 불길은 단순한 폭발물이 아니라, 사랑과 의무, 국가와 인간을 집어삼킬 거대한 화염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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