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그림자》
제6편 붉은 심장의 흔들림
서울 강북, 한강을 내려다보는 고층 건물 옥상. 찬 바람이 밤공기를 가르며 불어왔다. 옥상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눈빛은 차갑고 고요했지만, 심장 속은 폭풍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방희.
북한 특수8군단의 최정예 저격수이자, 남한 사회에서는 이명현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수족관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자.
그녀는 손에 들린 저격 소총을 천천히 분해하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나는 군인이다. 감정은 사치다. 임무를 잊지 마라.”
그러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늘 한 사람, 유중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따뜻한 미소와 손길. 그 앞에서는 냉혹한 군인의 가면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 전, 국정원은 또다시 북한 간첩 조직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CTX 폭약을 이용해 모의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의실에서 분석관이 보고했다.
“이번 실험은 기존 폭약 실험과는 달랐습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전제로 한 시뮬레이션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상은… 경기장 구조물입니다.”
회의실 안에 긴장감이 흘렀다.
장길이 중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형… 이건 그냥 폭탄 테스트가 아니에요. 명확히 목표를 겨냥한 훈련입니다. 경기장 테러가 확실합니다.”
중원은 차갑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서는 또 다른 의문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녀가 있다. 명현… 아니, 방희.’
그날 밤, 중원은 명현의 수족관을 찾았다. 아이들이 떠나고 고요해진 공간에서, 그녀는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중원을 맞이했다.
“오늘도 늦었네.”
“응. 요즘 일이 많아서.”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중원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어쩔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명현아.”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람은… 나라와 사랑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까?”
그녀는 순간 굳어졌다. 그러나 곧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중원 씨, 왜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해? 난 그냥 여기서 물고기 돌보는 게 전부인걸.”
그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직감하면서도, 차마 더는 묻지 못했다.
며칠 후, 국정원은 또다시 충격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북한 간첩 조직이 남북 단일팀의 월드컵 예선 경기장 구조 도면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분석관은 설명했다.
“도면에 표시된 지점은 관중석 하부, 철골 구조물, 그리고 VIP 출입구입니다. 만약 CTX를 그곳에 설치한다면…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중원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
“놈들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서는 여전히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정말 그녀가 이 모든 걸 지휘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사랑한 여인과는 다른 존재일까?’
그 시각, 북한 간첩 조직의 은신처. 방희는 상부와의 통신을 받고 있었다.
“CTX는 준비되었다. 다음 단계는 단일팀 경기장에서의 실전 배치다. 네가 직접 지휘하라.”
그녀는 무전기를 내려놓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예, 알겠습니다.”
입술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붉게 흔들리고 있었다. 중원과 함께했던 기억이 계속해서 그녀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국정원은 서울 외곽의 한 창고를 급습했다. 그곳에는 북한 조직이 준비해둔 무기와 폭발물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정작 CTX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현장을 수색하던 중원은 바닥에 떨어진 작은 메모 조각을 발견했다. 번역된 글자 속에는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방희, 최종 임무 준비 완료.”
그는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한 여인, 명현이 곧 이방희라는 사실을.
그날 밤, 중원은 술에 취한 채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장면이 교차했다.
명현과 함께 웃던 날들,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보며 나눈 대화, 그리고 저격수의 차가운 눈빛.
‘나는 지금까지 뭘 믿어왔던 거지? 사랑? 아니면 환상?’
그는 잔을 탁자에 세게 내려놓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 설령 그 진실이 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는다 해도.’
한편, 명현은 수족관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낙서가 벽에 남아 있었고, 물고기들은 여전히 고요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녀는 수조 속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나는 누구일까? 군인인가, 아니면… 그 사람의 연인인가.”
그녀의 심장은 점점 붉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념과 사랑, 의무와 감정 사이에서 갈라지는 균열은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국정원은 이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코드명 이방희. 그녀는 이번 CTX 테러 작전의 핵심 인물이다.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보고서를 손에 쥔 중원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굳어 있었지만, 심장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결국, 내가 직접… 그녀를 막아야 한다는 건가.’
그 순간부터, 그의 가슴 속에는 피와 같은 붉은 흔들림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도, 단순한 사랑도 아니었다.
국가와 사랑, 이념과 인간, 모든 것이 충돌하며 피처럼 진하게 끓어오르는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 붉은 심장은, 곧 거대한 폭발로 이어질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