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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그림자

분단의 그림자 - 제7편 서로 다른 조국, 같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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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그림자》

제7편 서로 다른 조국, 같은 눈물

서울 남산 기슭, 국정원 지하 상황실은 한밤중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모니터에는 각종 도청 기록과 위성사진이 실시간으로 떠올랐고, 요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움직이고 있었다.

분석관이 차갑게 보고했다.
“경기장 테러 시뮬레이션, 완료되었습니다. CTX가 설치될 경우 피해자는 최소 3만 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단일팀의 상징성이 무너지고, 남북 화해 분위기는 완전히 붕괴할 겁니다.”

회의실 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장길이 중원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형,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 여자가 정말 ‘이방희’라면… 우리가 직접 손을 써야 해요.”

중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차갑게 굳은 눈빛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는 무수한 목소리가 뒤엉키며 소리쳤다.
‘그녀를 믿고 싶다. 하지만… 이미 모든 증거가 그녀를 가리키고 있다.’


며칠 후, 국정원은 서울 외곽의 비밀 은신처를 급습했다. 격렬한 교전 끝에 일부 간첩 조직원이 체포되었고, 그들의 휴대 장비에서 결정적인 파일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파일 속에는 이방희의 임무 일지가 담겨 있었다. 날짜와 장소, 그리고 CTX 이동 경로까지 상세하게 기록된 자료였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흐릿하게 찍힌 사진 한 장.
서울 강남의 작은 수족관 앞, 밝게 웃으며 문을 여는 한 여자의 모습.

그 순간, 중원의 눈이 얼어붙었다.
그녀였다. 명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중원은 술에 취한 채 명현의 수족관 앞에 섰다. 문은 이미 닫혀 있었지만,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는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족관 안은 고요했다.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수조의 빛만이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명현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중원 씨… 이렇게 늦게 웬일이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향해 무겁게 걸어갔다. 눈빛은 차갑고, 손은 떨리고 있었다.

“명현아…”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너, 누구야?”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었구나.”

그 순간, 그의 심장은 무너져 내렸다.


둘은 수조 앞에 앉아 오랫동안 말없이 있었다. 수조 속 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교차해 비추었다.

“나는…” 명현이 입을 열었다.
“북한 특수8군단 소속. 코드명, 이방희.”

중원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왜 숨겼어? 왜 나를 속였어?”

“처음부터 속일 생각이었어. 남한에 잠입했을 때, 수족관은 단순한 위장이었고… 너도 처음엔 임무의 일부였어.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널 만나고, 함께하면서… 모든 게 흔들렸어. 나는 군인이면서도, 한 여자가 되어버렸어.”

중원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 너였어… 왜 우리가 서로 적의 세계에서 태어났어…”

명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내 마음만은 거짓이 아니었어.”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깊은 침묵에 잠겼다. 한쪽은 국가의 요원, 다른 한쪽은 적국의 간첩.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단지 남자와 여자로 마주한 두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명현은 이미 북한 상부로부터 마지막 지령을 받고 있었다.
“경기장 테러. 반드시 성공시켜라.”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명령은 절대였다. 거역한다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북한에서 처참히 처벌당할 것이다.


며칠 뒤, 국정원은 또다시 작전에 돌입했다. 간첩 조직이 CTX를 서울 도심으로 이동시킨다는 첩보였다. 중원은 직접 현장 지휘를 맡았다.

어둠 속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탄이 튀고, 불꽃이 어둠을 갈랐다. 그 혼란 속에서, 옥상 위에 선 실루엣이 보였다. 저격수의 자세. 블랙 피어스 탄환.

그녀였다. 이방희.

중원의 심장이 무섭게 요동쳤다. 총을 겨눈 손이 흔들렸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명현아…” 그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총성 대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눈물은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북한 조직은 CTX 일부를 다시금 챙겨 달아났고, 국정원은 큰 피해를 입었다.

작전 보고서가 본청에 제출되었을 때, 국장은 단호하게 명령했다.
“이방희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그게 곧 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이다.”

중원은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심장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 그는 홀로 앉아 명현과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족관의 푸른 빛, 그녀의 따뜻한 미소, 함께 웃던 순간들. 그리고 오늘, 저격수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

‘우린 서로 다른 조국을 가졌지만… 그 눈물만은 같았다.’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곧 다가올 선택의 순간, 그 어떤 답을 내리더라도… 피할 수 없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음을.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더 이상 단순한 요원과 간첩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조국을 가졌지만, 같은 눈물을 흘리는 두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이야말로, 곧 한반도의 운명을 뒤흔들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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