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그림자》
제10편 희생의 꽃, 남겨진 그림자
서울의 새벽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거리는 고요했고, 출근을 서두르는 몇몇 시민들만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 지하 상황실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
분석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은 CTX 흔적이 또 포착됐습니다. 이번에는 경기장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 광화문 인근입니다. 북한 조직 잔당이 최후의 시도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회의실 안이 얼어붙었다.
국장은 차갑게 명령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반드시 끝내라. 실패하면 대한민국의 심장이 꺼진다.”
모든 시선이 유중원에게 향했다. 그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직접 끝내겠습니다.”
한편, 병원 중환자실. 명현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 눈을 떴다. 차가운 기계음과 의료진의 속삭임이 귀에 들어왔다. 어깨의 상처는 여전히 깊었고,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분명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막아야 한다.’
그녀는 고통을 무릅쓰고 몸을 일으켰다. 의료진이 말렸지만, 그녀는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조국의 명령을 저버리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리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광화문 광장.
북한 간첩 잔당이 설치한 CTX 폭약은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통 몇 개였지만, 그 위력은 수천 명을 죽이고 도심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었다.
국정원 요원들이 전방위로 진입했고, 총성이 울렸다. 도심의 어둠 속에서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다.
중원은 무전을 움켜쥐며 외쳤다.
“폭약 위치 확인! 반드시 해체해야 한다!”
장길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형, 폭약이 광장 중앙 기념비 하부에 설치돼 있어요! 타이머는… 10분 남았습니다!”
중원의 심장이 폭발 직전처럼 뛰었다.
‘10분… 10분 안에 끝내야 한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나타난 실루엣.
어깨에 붕대를 감고, 휘청이며 다가오는 한 여인.
명현이었다.
중원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명현아! 어떻게 여기까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피로한 얼굴에선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이건… 내가 끝내야 해. 나만이 할 수 있어.”
“넌 부상당했어! 지금은 움직일 수 없어!”
“아니, 중원아. 이건 내 죄고, 내 임무야. 내가 시작한 불길은 내가 막아야 해.”
타이머는 무정하게 초를 깎아내렸다.
00:08:45 … 00:08:44 …
북한 잔당이 마지막 저항을 하며 총격을 퍼부었다. 국정원 요원들이 맞불을 놓았고, 도심은 전쟁터로 변했다.
명현은 몸을 날려 엄폐 뒤에 숨어들며 중원에게 속삭였다.
“내가 폭탄으로 갈게. 넌 조직 잔당을 막아.”
“안 돼! 너 혼자 두지 않겠어!”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
“중원아, 네가 사랑한 건 나, 명현이지? 그럼 나를 믿어줘. 마지막만큼은.”
타이머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00:05:12 … 00:05:11 …
명현은 마지막 힘을 짜내 폭발물 쪽으로 향했다. 어깨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중원은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절규했다.
“명현아, 제발 돌아와! 제발!”
그러나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직 폭발물만을 향해 나아갔다.
폭탄 앞에 도착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타이머를 붙잡았다. 그러나 장치는 이미 고도로 복잡하게 설계돼 있었다. 단순한 해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녀는 차갑게 웃었다.
“역시 그렇군… 상부는 나조차 희생시키려 했어.”
타이머는 2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는 단 하나의 선택만이 남았다.
00:01:58 …
명현은 깊게 숨을 고르며 마지막으로 중원을 바라봤다. 멀리서 총격을 뚫고 달려오는 그의 얼굴.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중원아…” 그녀가 속삭였다.
“사랑했어. 그리고 미안해.”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폭발물을 품에 안았다.
00:00:12 …
중원이 절규하며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00:00:01 …
거대한 폭발음 대신, 둔탁한 진동만이 울려 퍼졌다.
명현이 몸으로 기폭 장치를 막아내며, 폭발은 내부에서 소멸했다.
그녀의 몸은 충격으로 쓰러졌고, 폭약은 무력화되었다.
광장은 고요해졌다. 요원들의 환호가 터졌지만, 중원은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무너져 내리듯 그녀에게 달려갔다.
명현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은 마지막 말을 남기려 애썼다.
“…내 사랑은 거짓이 아니었어.”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고, 곧 영원히 닫혔다.
중원은 그녀를 품에 안고 오열했다.
“명현아! 왜… 왜 이런 세상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도시는 구해졌다. 수만 명의 생명은 지켜졌다.
그러나 한 남자의 사랑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후, 국정원 본청 옥상.
중원은 홀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국가는 지켜졌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듯했다.
“…내 마음만은 거짓이 아니었어.”
그의 눈가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희생의 꽃, 남겨진 그림자〉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한 여인은 조국과 사랑 사이에서 스스로를 불태웠고, 한 남자는 살아남아 그 그림자를 짊어진 채 남았다.
그리고 분단의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그들의 희생 위에 또 다른 하루를 쌓아갔다.